미국에 경기침체가 다가오고 있다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정작 주요 경제 지표에서는 아직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경기 변화가 거시지표로 나타나기까지는 일정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으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정책기관과 경제 전문가들은 경기침체가 지표로 나타나기 전에 미리 흐름을 예측하기 위해 온갖 정보들을 살피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전쟁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지표가 이를 반영하는 속도가 느려 전문가들이 여러 민간 자료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고 7일 보도했다.
미국에서 경기침체 징후는 많이 볼 수 있다.
햄버거 체인점 맥도날드 매출이 줄고, 서부 지역 관문인 로스앤젤레스(LA) 항에 입항하는 컨테이너선 수는 감소세다. 생활용품업체 프록터앤드갬블(P&G)은 관세 영향으로 제품값을 올렸으며,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장난감업체 마텔은 제조공장을 중국 밖으로 옮기고 있다.
하지만 주요 경제 지표는 다르다.
소비자 지출은 감소하지 않았고 실업률도 증가하지 않았다. 기업들의 설비투자나 소모품 구매도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와 오락가락하는 정책 불확실성 영향이 거시지표에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지적하지만, 그전까지는 관세 세수와 라스베이거스의 호텔 예약률, 트럭과 철도 화물 운송량 등 평상시라면 잘 보지 않을 자잘한 자료들까지 들여다보는 실정이다.
바클레이즈의 마크 지아노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문제는 지금 우리가 의지할만한 지표가 별로 없다는 점”이라면서 “자잘한 정보, 비전통적인 지표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코로나 팬데믹 초기 때와 비슷하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전문가들은 앞으로 닥칠 피해를 예상하기 위해 식당 예약률이나 브로드웨이 공연 관람객 수, 공항검색대 통과 승객수 등도 참고했다.
회계법인 RSM의 조 브루수엘라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당시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면서 “다시는 교통량과 같은 지표를 따지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이런 지표에 대해 이견도 많다.
관세 전쟁이 물가 상승이나 상품 부족으로 나타날지, 소비자 지출 감소와 실업 증가로 이어질지, 어느 분야에서 실업이 먼저 나타날지 등을 예측하기 어렵다.
씨티그룹의 앤드루 홀렌호스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제 변동성이 큰 시기에는 실제 소비자 행동이 변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데다 행동이 변하고도 한달여가 지나야 지표에 반영되기 때문에 자잘한 지표를 통해 상황 변화를 파악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관세 충격은 거시지표 한군데에는 나타났다. 소비자와 기업이 새 관세 발효 전에 ‘사재기’에 나서면서 3월에 미국 무역 적자가 급증, 1천400억 달러를 기록했다.
향후 상황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관세로 인해 물가가 오르면 소비자들이 소비를 줄여 궁극적으로 실업 증가와 경기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소비자, 특히 부유층은 재정 상황이 튼튼해 소비를 계속할 것이며 기업은 높은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어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한 관세 정책에서 후퇴하거나 다수 경제학자가 예상하는 것보다 관세로 인한 타격이 심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작은 정보에서 경제의 방향을 읽으려 하지만 이것도 일관되게 나오지는 않는다.
항공사 경영진은 업계에 이미 경기 침체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지만 호텔 객실 점유율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맥도날드나 치폴레 매출은 지난 분기 줄었지만 피자헛, KFC, 타코벨 등의 매출은 늘었다.
홀렌호스트 이코노미스트는 “작은 정보들이 맥락상 매우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연준의 금리정책을 좌우하는 것은 구체적인 거시지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