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제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2020년 대선 패배 부정과 2021년 1·6 의사당 폭동 사태 등에 따른 초대형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4년 만에 역사적인 ‘징검다리’ 재집권에 성공, 트럼프 2.0 시대의 문을 여는 것이다.
동맹국을 포함해 사실상 피아를 구분 않는 미국 이익 중심의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한반도를 비롯한 글로벌 안보와 국제 무역 질서가 다시 한번 대변혁의 시기를 맞게 됐다.
특히 신(新)식민주의, ‘돈로(Donro·트럼프의 도널드와 몬로 전 대통령의 합성어) 독트린’ 등으로까지 불리는 취임 전 영토 확장 공세에서 보듯이 미국 유권자의 재신임을 받은 트럼프 2기 정부는 단순히 1기의 연장이 아니라 더 독해진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트럼프의 선거 구호) 정부’를 예고하면서 전 세계를 초긴장의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나아가 미국과 전략 경쟁을 벌이는 중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비롯해 북한, 이란 등이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도전하면서 밀착 행보를 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는 민주주의적 가치와 자유 무역을 두 축으로 구축된 전후 국제 질서의 변화도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식을 하루 앞둔 19일 JD 밴스 부통령 당선인과 함께 워싱턴 근교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 무명용사 묘역을 찾아 헌화했다.
이에 앞서서는 대통령 영빈관인 블레어하우스에서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조찬을 했다. 2기 정부 국정 의제와 관련해 의회에 협력을 당부했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어 오후에는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대선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열린 ‘마가’ 집회에 참석, 연설을 통해 광범위한 조치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그는 “내일(20일)을 시작으로 우리나라가 직면한 모든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역사적인 속도와 힘으로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내일 정오에 우리나라를 되찾을 것”이라며 “기나긴 4년간 미국의 쇠락은 막을 내릴 것이며, 우리는 미국의 힘과 번영, 품위와 긍지를 영원히 다시 가져오는 새로운 날을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내일 저녁 해가 질 때쯤에는 우리 국경에 대한 침략이 끝날 것”이라며 “내가 내일 취임사에서 소개할 국경 보안 조치는 우리의 국경을 복원하기 위한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광범위한 노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은 “내일 여러분을 매우 행복하게 만들 매우 많은 행정명령을 여러분은 보게 될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의 급진적이고 어리석은 행정명령은 내가 취임 선서를 하면 수 시간 내로 전부 폐기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20일 낮 워싱턴DC의 연방의회 의사당 중앙홀(로툰다)에서 취임식을 한다.
그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한 뒤 취임사를 하고 향후 4년간의 국정 비전을 밝힐 예정이다.
로툰다에는 600명만 수용할 수 있어 전직 대통령과 정계 핵심 인사 및 해외 정상들 등으로 참석 인원이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한국 정·재계 인사들은 국회의사당 인근 2만명 수용 규모의 실내 경기장 ‘캐피털 원 아레나'(Capital One Arena)에서 영상으로 취임식을 지켜볼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당선인의 임기는 미국 헌법에 따라 낮 12시(한국 시간 21일 오전 2시) 시작된다.
그는 취임식을 마치고 의회 오찬과 군 사열 행사 등을 한 뒤 백악관에 입성할 예정이다.
대선 때 사실상 ‘취임 당일 하루는 독재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경제, 통상, 이민, 에너지, 대외정책 등에 대한 100여개의 ‘무더기 행정명령’을 통해 국정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전망된다.
대외적으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 대한 즉각적인 고율 관세 부과 시행 여부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해 11월 대선 승리 직후에 불법 이민 및 마약 유입 방지에 노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취임 당일 멕시코와 캐나다에는 각 25%, 중국에는 10%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나라에 10% 내지 20%의 기본 관세, 중국에 대한 60%의 추가 관세 등도 공약했다.
나아가 관세 부과를 통해 제조업체들이 미국에서 물건을 만들 수밖에 없도록 해 한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제조업체들이 미국으로 대규모로 유입되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를 위해 트럼프 당선인은 법적 절차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무역법이 아니라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에 따라 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속도전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런 움직임에 대응해 캐나다, 멕시코 등은 이미 보복관세 방침을 세운 상태로 트럼프 당선인이 실제 관세 부과에 나선다면 글로벌 통상 전쟁의 서막을 열면서 국제 무역 질서의 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세계은행(WB)은 지난 16일 미국의 10%의 보편관세 부과로 인해 통상전쟁이 현실이 될 경우 올해 전세계 경제성장률이 2.7%에서 2.4%로 0.3%포인트나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가자지구 전쟁의 휴전이 불안하게 개시된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대응 방식도 국제적 관심사다.
트럼프 당선인은 수차 ‘데이원(Day 1·정권 1일차)’ 공약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강조했으나 지난달 타임지 인터뷰에서는 ‘상황이 복잡하다’며 쉽지 않다는 취지로 언급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에 반대 의사를 밝혔던 트럼프 당선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조속히 회동해 전쟁을 끝내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트럼프 당선인과 푸틴 대통령간 회동을 위한 물밑 준비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앞서 두 사람은 전화통화를 먼저 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크라이나 종전 방안과 관련, 트럼프 당선인 측에선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우크라이나가 전부 수복하겠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언급이 계속 나오고 있다.
만약 우크라이나의 영토 일부 포기 등이 포함된 협상이 현실화할 경우 우크라이나의 안보 보장 문제를 포함한 종전의 방향은 향후 유럽은 물론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동맹 관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동안 바이든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종료될 경우 중국의 대만 침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대응해 왔다.
트럼프 당선인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복잡하게 하는 요인으로 ‘북한의 참전’ 문제를 거론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과정에 트럼프 2기 정부 내에서 북한 문제가 부상할 가능성이 있고, 조기에 북미간 대화나 정상간 외교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그동안 트럼프 당선인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개인적 친분을 수차 강조해왔으며 특히 “핵무기를 가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잘 지내는 것이 좋다”는 언급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당선인의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지칭하기도 해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과 북핵 해법이 주목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른바 ‘부자 나라’인 한국에 대해서는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다시 압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데이 원’ 공약은 아니나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승리 뒤 파나마운하 반환,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 및 캐나다 미국 편입 방침을 밝혔다.
그는 그 방법으로 경제적 강압은 물론 무력 사용 가능성도 시사했는데 실제 현실이 될 경우 엄청난 국제적 파장이 예상된다.
미국내 산업 정책 측면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전기차 의무화 정책’을 취임 첫날 폐기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연방 정부에 전기차 의무화 정책은 없기 때문에 이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상의 전기차 세액 공제 제도를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많다.
여기에다 트럼프 당선인은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투자에 대한 지원도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제조업 유치 전략과 마찬가지로 해외 생산에 대해 관세를 매기면 보조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게 트럼프 당선인의 논리다.
만약 전기차 및 반도체 지원 등의 정책이 바뀔 경우 현대차·기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바이든 정부에서 막대한 대미 투자를 한 한국의 기업도 영향을 받게 된다.
이와 함께 트럼프 당선인은 ▲ 대규모 불법 이민자 추방 ▲ 출생 시민권 제도 폐기 ▲ 석유 시추 등 에너지 개발 허용 등의 정책도 취임 즉시 시행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이 가운데 불법 이민자 추방은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란 보도도 나오는 등 트럼프 당선인 측이 의욕적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트럼프 2기 정부는 1기 때와 달리 내각도 이른바 ‘충성파’로만 구성될 전망이며 상·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으로부터도 견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
보수 우위의 연방 대법원도 지난해 대통령에 광범위한 면책권을 부여한 상태라 트럼프 2기 정부는 내년 11월 중간 선거까지는 독주를 견제할 브레이크가 사실상 없는 상태다.
다만 공화당이 의회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지는 못해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입법·예산 패키지의 처리가 얼마나 신속하게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트럼프 당선인은 정권 초기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부채한도 문제를 포함해 모든 이슈를 총망라한 ‘메가 법안’을 통해 ‘원샷’으로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공화당 당내에는 정부 지출 대폭 감액의 선결을 요구하는 강경파가 존재하고 있어서다.
여기에다 트럼프 당선인 공약대로 관세 부과 드라이브가 이뤄질 경우 경제 핵심 과제인 인플레이션 문제가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대외적으로 미국의 힘을 투사하면서도 직접적으로 미국이 개입하는 상황을 피하는 대외 정책 기조의 균형점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많다.
미국 싱크탱크인 스팀슨 센터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5년 10대 글로벌 리스크’의 하나로 미국을 거론하면서 “트럼프 1기 때보다 세계가 더 복잡해지고 위험해진 상황에서 트럼프 2기 정부가 모순적이고 서로 어긋나는 목표를 추구하는 데서 오는 파열과 혼란이 가장 즉각적인 위험”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