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상징 야자수, 이젠 제거대상

캘리포니아의 야자수

 [특파원 시선] LA의 상징이었는데…이젠 제거대상으로 내몰린 야자수

“캘리포니아 남부 도시에는 더 많은 그늘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제 야자수(palm tree)를 버려야 할 때인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의 지역 일간지인 LA타임스에는 이달 초 이런 제목의 기사가 주요 지면에 실렸다.

LA를 비롯해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의 상징과도 같은 야자수를 없애자니, 칼럼도 아니고 지역 유력 일간지의 주요 기사로는 다소 과격하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기사를 끝까지 읽어보니 왜 이런 주장을 했는지 수긍이 갔다.

이 신문은 일단 “우뚝 솟은 줄기와 두꺼운 잎을 지닌 야자수는 오랫동안 LA의 스카이라인을 지배해 왔으며, 많은 사람에게 이 지역의 햇살 가득한 번영의 약속을 상징한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신문은 야자수가 이 지역의 토착 식물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1800∼1900년대 이 지역에 정착한 주민들이 외국에서 야자수를 들여와 심기 시작했으며, 1930년대에 야자수 심기 붐이 일어난 결과로 야자수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평생 야자수를 연구해온 원예 전문가 도널드 R. 호델은 “야자수라고 하면 머나먼 곳에 있는 이국적인 열대우림을 떠올리게 된다”며 “내가 자란 캘리포니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LA타임스는 “미국의 다른 도시들도 야자수의 역할과 미래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다”면서 플로리다주 남부의 웨스트팜비치가 기후 위기에 맞서기 위해 야자수를 폐기하겠다고 발표한 사례를 들었다.

마이애미 비치 역시 향후 30년 동안 도시 가로수 중 야자수의 비율을 기존 60%에서 25%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산림소방국도 도시·지역사회 산림 조성 보조금 수령자가 야자수를 심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수목 전문가들은 야자수가 유지·관리에 비용이 많이 들고 다른 가로수 만큼 혜택이 많지 않다고 설명한다.

특히 올해처럼 미 서남부에 폭염이 장기화했을 때 그늘을 거의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점은 치명적인 단점으로 꼽힌다.

LA 카운티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야자수이자 두 번째로 많이 심어진 식물 종인 ‘멕시칸 팬 팜’은 그늘 폭이 10∼18피트(3∼5m) 정도이지만, 높이가 100피트(약 30m)에 달해 바로 아래 보도에는 그늘을 거의 드리우지 않는다. 정오쯤에 태양이 바로 위에 있을 때만 보도에 그늘이 진다.

반면 가로수로 많이 쓰이는 활참나무는 70피트(21m) 미만으로 자라며, 일반적으로 이 높이의 2배에 달하는 그늘을 만들어준다.

환경·엔지니어링 회사인 두덱의 수목 전문가 라이언 앨런은 “우리가 나무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환경적인 혜택과 비교해 야자수가 주는 혜택은 매우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가 나온 뒤 독자들이 보낸 의견도 “동의한다”는 쪽이 많았다.

LA 카운티 패서디나시 주민 제프 베넷은 “식물학적으로 야자수는 나무가 아니라 풀에 더 가깝다”며 “야자수는 나무가 주는 혜택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고 거들었다.

LA 카운티 내 레이크 발보아 지역의 주민 스티븐 레퍼트는 “야자수는 가지치기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죽은 가지와 잎이 높은 곳에 매달려 방치된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불이 쉽게 붙고 화재를 확산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LA 카운티에 거주하는 필자 역시 지난주까지 섭씨 30도 중반을 오르내리는 폭염에 시달리며 밖에 나갈 때마다 한국의 가로수를 그리워했던 터라 이런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기후 변화로 폭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면서 과거에는 인기가 높았던 야자수가 이제는 맹공격을 받는 모양새다.

앞으로 LA 주민들의 이런 의견이 대세를 이룬다면 언젠가는 LA에서 야자수를 보기가 어려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기후변화의 여파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 듯하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임미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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